음악의 언어 / 송은혜

이전에 읽은 책이 공부하고 싶어지는 음악이야기였다면
이번에 읽은 책은 연주하고 싶어지는 음악이야기
Prelude 로 시작해 서른세 개의 일상 변주곡이 이어지다 coda로 끝나는 목차부터가 딱 음악가가 쓴 글
음악이 시간에 새긴 인상이란게 인상적이었음. 속도를 기억한다는건 어떤걸까? 벗꽃 잎이 봄바람에 흩날리는 속도, 주인을 알아보고 달려오는 강아지의 속도, 여름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다가 점점 빨라지며 시원한 소나기가 되는 속도가 음악이 되는것, 무미 건조하게 느꼈던 악보 속 속도 기호에서 갑자기 생명력이 느껴짐. 각 용어의 뜻을 대표적인 음악과 함께 떠올릴 수 있도록 나만의 음악 속도계를 만들어두면 유용하다는데 음악을 속도로 기억할 수 있을까?
12월 연주회가 예정되어서인지 더 마음 속에 와 닿음. 나의 은유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고 너무 서두르지 않기를. 무대 위 투명 풍선 속에서 음악과 만나야지, 삶을 들려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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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투명 풍선
투명한 풍선으로 들어가는 연습. 객석의 소음과 시선을 튕겨 내고, 무대 위에 오직 나만이 제어할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을 만든다. 투명 풍선은 내가 선택한 것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자, 사람들의 기대에서 벗어나 내 의지로 나를 고립시키는 공간이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순간에는 나와 음악만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멋진 순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음악만으로 이뤄진 세상이 만드는 충일감이 강해지면 그 에너지는 다시 객석으로 향한다. 이제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나를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을 함께 느끼러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 나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다.
/삶을 듣는 순간
음악가는 음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음악으로 사고하며 삶을, 감정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일상의 경험을 소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낱낱이 살피고 되새기는 사람이다. 한 음 한 음을 우리 각자에게 의미 있는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음악에 스민 누군가의 삶이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이다.
/은유 여행의 시작
새로운 작품을 준비할 때는 먼저 악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본 뒤, 조금씩 나누어 연습하기 시작한다. 악보의 기호를 나의 언어로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곡가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악보의 음들을 해체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손가락이 마음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경우 시간이 아주 오래 거릴 수도 있다. 사실 나중을 생각한다면 느린 손가락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해체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너무 빠르게 진행하면 나중에 놓친 것들을 찾기 위해 다시 이과정을 반복하느라 시간이 더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둘러 지나온 길의 풍경은 금세 잊히기 마련이니까.
너의 날들이 그저 게으르게 흘러가도록 두지 말기를. 노력하고, 과제를 완수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기를. 매일의 차이가 구도의 길로 너를 이끌어갈 것이니. / 베토벤의 일기장에서
리스테소 템포 : 음악을 이끌어오던 속도 그대로 유지하라는 음악 기호. 외부 환경이 급격히 변할 때, 리스테소 템포를 떠올린다. 변화하는 상황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대신, 중심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나의 템포로 새로운 상황을 끌어안을지 고민한다.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힘들어질 뿐이다. 갑작스러운 리듬의 변화에 음악이 경직되듯이, 나 역시 잔뜩 긴장한 채 종종걸음을 치게된다. 나의 중심에 먼저 집중하고 나의 속도를 알아야만 그에 어울리는 적절한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Largo 라르고
가장 느린 속도. 폭넓은, 광활한 이란 의미 내포함.시간을 늘림
/Adagio 아다지오
편안하게,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라는 이탈리아어, 나를 번잡한 세상에서 구원해 천상으로 데려가 줄 것만 같은 속도
/Andante 안단테
중간 속도. Andare 가다에 어원을 둔 안단테. 걷는 속도, 나의 음악 속도가 걷는 속도에 어울리는지?
/Allegro 알레그로
새싹의 생명력, 비가 내려도 구슬프지 않은 봄의 생기가 알레그로의 속도. 그저 빠르기만 한게 아닌 가볍고 생기 있고 즐거운 기분의 속도
/Presto 프레스토
가장 빠른 속도. 튀어나갈 준비가된, 즉각적인 반응을 지시하는 속도
모데라토는 중용의 절제된이라는 프랑스어로 표현. 보통 빠르기. 감정을 섞지 않은 채 그저 중간 속도로 연주하기에 어울리는 선율, 중립적인 주제를 제세할 때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속도가 어울릴지도. 안단테와 알레그로의 중간쯤이라는 사람도 있음.
난 오르간을 선택한 게 아니야.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선택했고, 그중 오르간을 연주하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