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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시간을 걷다 / 김세리, 조미라

2021. 3. 10. 18:27

처음 몇장 볼때는 한시가 막 나오길래 너무 학술적 책인가, 잘못 빌렸네 생각했다. 하지만 역사 책 속 거대 담론이 아닌 오늘 아침에 마신 차에 대한 수다라고 생각하며 책의 제목차럼 느긋하게 산책하듯 읽어가기 시작하니 조근조근 들려주시는 옛 이야기가 흥미로워졌다. 시험 볼게 아니므로 너무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그냥 건너뛴다. 그렇게 쉽게 넘겨가며 읽어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이 남는다. 오랜만에 참 재미있고 유익했다.

차의 고향은 중국 사천이라고한다. 다른 책에서는 운남성이 차나무의 원산지라고도 하던데 같은건지 뭐가 맞는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오래된 차 나무가 많은 곳에 꼭 한번 가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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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이야기

5천년쯤 전에도 사람들은 차를 마셨나보다. 신농이라는 5천년 전 전설 급 중국 사람이 있었다. 이분 기록 중 100가지 풀을 맛보고 72가지 독초에 중독 되었는데 찻잎으로 해독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하니 정말 역사가 깊은 음료다.

신농 때도 이런 형태였는지 모르겠지만, 옛날 차는 단차라고 덩어리의 형태로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제다과정이 필요했다. 밥도 굶을 수 있는 시절에 이런게 아무나의 먹거리였을 리 없다. 귀족들의 차 도구는 금과 은으로 반짝반짝했다.

단차 시절 차는 우려마시는게 아니라 끓여 마시는 거였다. 단차를 조각내거나 갈아서 적당한 크기로 가루를 내고 곱게 체 치고, 특별한 물과 숯을 구해 엄청 따져가며 먹었다고 한다.

이런 맛있는 차를 먹기위한 찻집들도 있었다고 한다. 천년전 도시 카페, 다관, 다방, 다사, 다점! 이런 찻집들은 당대에 만들어져서 송대에 번성했다고 하는데 어디에 무슨 다방이 있고 몇시에 문을 열고 닫는지 등 블로거가 동네 맛집 카페 탐방하듯 작성한 기록들도 남아 있다고 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영업했고 유실물보관센터도 있고 직업과 신분에 구애되지 않았다 등등...

투다라는 차 겨루기 대회같은것도 있었나보다. 이 물이 삼다수인지 에비앙인지 따지듯 물의 출처도 따지고 청자보다 더 어두운 흑유잔도 만들고 차 거품으로 티 아트까지 했다고 하니 맛은 물론 눈으로도 마시는 차가 되어있었나보다. 이렇게 매니악한 사람들이 승부욕까지 띠기 시작하면 말 다했다. 어떻게 보면 차 문화의 고도화고 어떻게 보면 차가 망하는 지름길일지도.

당대 황실은 재정 수입원으로 차를 이용하기위해 점점 차에 붙는 세금을 높이다가 전매제까지 나오게 되었고, 대부분의 백성이 차를 마시던 송대에는 차 전매제인 ‘각차법'이 다시 부활 했다고 한다.

작은 단차에는 많은 찻잎이들어가고 값비싼 향료도 사용되고 제다 과정도 복잡했는데 나라에서는 자꾸 많이 만들어내라고 하고,,,이때문에 농민들이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단차 제조 노역에 질린 농민출신 왕 명 태조는 명나라를 세우고 1391년 단차 금지령을 내려버린다. 그리고 차는 단순하고 간결해 졌다고 한다.

청자에서 백자로 찻사발에서 찻잔으로 우려서 마시는 시대가 오게되었다. 하지만 트렌드는 늘 변하는것. 차에 꽃향을 덧 입히거나 찻잔에 굽을 추가하는 등 간결해진 차에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나보다. 이런 베리에이션에는 취향이 중요한 법. 메이드인 차이나 자스민차를 선물받은 우리나라 한 선비의 취향에는 영 아니였나보다. 좋은 차는 고운 여인 같다던데 계집종 재주 용모 추하기가 심하다며 혹평 했다고…자스민차 왜요... 맛나기만 한걸. 너무해요.

이 책에서 가장 웃겼던 부분은 정약용의 차 구걸이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추사 김정희님과 더불어 조선의 대표 차 매니아였나보다. 옥전차의 일곱 잔은 이미 다 마셔버렸다며 있어보이게 조르기, 몸에 병이 있어 꼭 차를 마셔야 한다며 불쌍해보이게 조르기 등 점잖은 분들이 차가 먹고싶어서 안 점잔해 보이는 순간이 인간적이라 괜히 웃음이 난다.

정약용님도 차 구걸에 인용했던 유명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잔은 목구멍과 입술 적시고
두 번째 잔은 외로운 번민을 씻어주고
서 번째 잔은 마른 창자를 적시고
가슴 속엔 오직 오천 권의 문자만이 남게 되며
네 번째 잔은 가벼운 땀이 솟아나
평생의 시름이 모두 모공을 통해 흩어지네.
다섯 번째 잔은 피부와 뼈가 맑아지고
여섯 번째 잔은 신선의 경지에 이르네
일곱 번째 잔은 마시기도 전에 양쪽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 솔솔 이네.

9세기 문인 노동이 귀한 황실차를 받고 감격해 쓴 ‘칠완다가’라는 시인데 차를 마신 후 느낌을 표현한 시 중 손에 꼽히는 시인가보다. 옆나라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인용되던게 신기하다. 다선이라 불릴 정도로 차를 즐겨마신 사람이라고 하니 차 매니아들 사이 아이돌급였는지도.

일본 차 문화는 정치 그 자체였다. 차 마시는 모임을 정치에 이용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회를 주도하고 차 자체에 의미와 형식, 권위를 이어가기위해 리큐를 이용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차에 독을 타 정적을 죽이기도 했다는데 급 푸틴의 홍차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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